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평도 포격전 (문단 편집) ==== [[민간인]] ==== 민간인 피해는 김치백(61), 배복철(60) 씨 사망, 경상 3명이다. 민간인 사망자는 [[연평부대]] 관사 신축공사를 하던 인부들로 처음에는 실종된 상태였으나 결국 숨진 채 발견되었다. 사망자 두 명 모두 시신이 손상된 상태이며, 한 구는 신체 대부분이 손상되었고 다른 한 구는 컨테이너 화재로 인해 하체가 손상된 상태로 발견됐다. 포격에 의한 화재가 원인인 듯하다. 연평도 주민들은 [[북한군]]이 민간인 거주 지역에까지 포격을 가하여 살상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 자체에 큰 충격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. 실제로 대피한 주민들은 그 당시 상황에 대한 큰 충격으로 심각한 후유장애까지 호소하고 있다. [[PTSD]]마저 우려되었다.[* 실제로 연평도 포격전이 1년이 넘도록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만 들리면 깜짝 놀라는 주민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.] [[http://www.cbs.co.kr/nocut/show.asp?idx=1642421|#]] 아예 영구 이주를 하자고 주장하는 주민들도 있을 정도였다. 인천시에 따르면 연평도 피격으로 주택 110동(전파 21동, 반파 3동, 일부파손 86동)과 주택 부속건물 6동, 창고 8동, 사무소 및 상가 4동, 공공건축물 5동이 피해를 당하였다고 한다. 또한 옹진군도 4호선을 비롯해 연평지역 6개 도로 700m가 피격으로 인해 파손되면서 7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였다.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003/0003560422?sid=102|#]] 또한 연평 내연발전소, 고압변전기가 포격을 당해 파괴됐고 산불도 10여 곳 이상에서 발생했다. 이동통신기지국도 대부분 파괴돼 휴대전화가 불통되었다. 인터넷 전화와 유선전화만 일부 통화가 가능하였다. [[http://www.asiae.co.kr/news/view.htm?idxno=2010112407244222543|#]] 다행히 [[연평도]]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복구 작업을 시작했고 이후 대부분의 주민들이 [[http://mbn.mk.co.kr/pages/news/newsView.php?category=mbn00009&news_seq_no=1044104|섬으로 귀환했으나]] 이 같은 공격이 계속 발생한다면 연평도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질 수도 있다. 이후 보도 통제와 민간인 통제가 이뤄지고 있어서 앞으로는 군 기지만 남을 수도 있다는 예측도 있었으나 포격전 1년 5개월 후인 2012년 4월 기준으로 [[연평도]] 포격전 이후 섬 인구가 오히려 150~170명 가량 증가했다고 한다. [[http://news.khan.co.kr/kh_news/khan_art_view.html?artid=201110052217115&code=950201|#]] 주민들도 연평도 포격전의 끔찍함을 잊고 [[꽃게]]잡이 등 생업에 열심이라고. 이후 2012년 4월에 500여 명이 피난할 수 있는 1호 대피소가 세워졌고 앞으로 연평도 전 인구가 대피하여 생활할 수 있는 7개 대피소 시설이 건립될 예정이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57&aid=0000192058|#]] 연평도는 포격전의 후유증을 벗어나려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. 그러나 일부 세력이 피해 보상 등을 노리고 일부러 외지에서 이주하는 등 악영향이 발생했고 연평도의 치안과 분위기는 매우 악화되었다. 사건 이전에는 원주민들만 있었기에 연평도 내의 학교에 자유로이 통학도 하고 집도 열고 잘 수 있을 정도였으나 사건 이후에는 보통의 도시와 같이 등교 때도 부모가 데리고 가야 하고 문은 꼭꼭 잠가야 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